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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라임 투자사 자금 횡령 수법, '조국 펀드' 수법과 판박이"


지난 2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IFC에 입주한 라임자산운용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품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뉴스1]
라임자산운용의 대규모 투자를 받은 코스닥 상장사 리드를 두고 벌어진 800억원대 횡령사건 주범들의 수법이 ‘조국 가족펀드’의 수법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스닥 상장사의 경영권을 확보한 뒤 정체불명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복잡한 송금 과정을 거쳐 자금을 빼내는 수법이다. 사모펀드의 투자금을 활용한 점도 닮았다. 금융투자업계와 법조계에서는 “최근 나타나는 작전 세력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라임 등이 500억원 투자했는데…페이퍼컴퍼니로 거짓 공시
20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리드 경영진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자본시장법 위반(사기적 부정거래) 혐의 공소장을 보면 리드 부회장 박모(43)씨와 리드 대표이사 구모(46)씨 등 리드 경영진 6명의 횡령 수법이 드러나 있다.

자금 횡령과 관련해서 주목할 사건은 리드가 지난 2018년 5월 전환사채(CB,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 발행을 통해 500억원의 대규모 자금을 투자받을 때 내세웠던 투자사와 자금 사용처 등이 모두 허위로 기재한 일이다. 이는 현재 재판에 넘겨진 구씨가 리드의 경영권을 확보해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불과 10일만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 기업공시에 따르면 리드가 발행한 500억원의 전환사채를 인수한 회사는 자본금이 100만원밖에 되지 않고 설립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은 '이지스'라는 회사였다. 하지만 검찰 조사 결과 이지스는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라임자산운용(250억원)과 라임 펀드 판매사들이 돈을 넣었다.

취재 결과 구씨는 이지스의 사내이사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박씨와 구씨 세력이 만든 껍데기 회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결국 라임 펀드가 투자를 감추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앞세워 거짓 정보를 공시한 것이다. 2018년 초 1000원대였던 리드의 주가는 그즈음 4000원대까지 치솟는다. 현재는 700원대에서 거래가 정지돼 있다.

검찰, 투자금 세탁해 이종필에게 전달 가능성 수사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CIO)이 지난해 10월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서울국제금융센터(IFC 서울)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리드는 당시 투자를 받은 500억원에 대해서 회사 운영 자금 등으로 활용한다고 공시했지만 이 역시 거짓이었다. 100억원은 구씨가 대표를 맡고 있었던 또 다른 회사 에프앤엠씨가 사채업자로부터 차입한 돈을 변제하는 데 사용했다. 47억원은 라임과 리드를 중개한 김모(54)씨의 계좌로 흘러 들어갔다. 김씨는 리드의 차명주식을 보유한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있는 인물로 현재 수배중이다.

당시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김씨 계좌로 들어온 47억원이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42)에게 금품과 사치품 등 다양한 형태로 전달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전 부사장의 잠적으로 수사가 더 진행되지 못했다. 당시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당시 이 전 부사장 개인 계좌로 넘어간 부분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며 "이 전 부사장의 신병이 확보되면 조사하려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현재 검찰 수사팀은 이 전 부사장이 이런 방식으로 대가를 받은 사례가 여러 투자사에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금융기관 임직원이 투자를 대가로 투자받는 기업에서 1억원 이상의 금품을 받으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수재)에 따라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이 가능하다.

"'조국 가족 펀드' 조범동의 업그레이드 버전"

지난 10일 서울 성수구에 위치한 WFM 본사 입구에 붙어 있는 간판. 영어 교육 업체였다가 지금은 배터리 쪽으로 사업을 확장한 상태다. 김민상 기자
전문가들은 이러한 수법이 '조국 가족 펀드' 코링크 프라이빗에쿼티(PE)가 투자한 WFM에서 벌어진 일과 동일하다고 분석했다. WFM은 2018년 12월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해 100억원의 거금을 조달했는데, 그 자금을 댔다고 공시한 회사가 CB 인수일로부터 불과 6일 전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였다. 해당 회사 주소는 충북 충주시의 한 낚시터 인근 공터였다.

라임 사태 피해자 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우리 김정철 변호사는 "자금 조달 방식과 주가 부양 시도가 매우 유사하다"며 "라임 사건의 경우 피해액이 1조원이 넘는 민생 다중피해 금융범죄라는 점에서 죄질이 더욱 나쁘다"고 말했다. 김경율 전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회계사)은 "비슷한 유형의 수법이 판을 치고 있는데,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풀어준 금융당국의 책임도 크다"고 꼬집었다.

검찰은 라임 사건을 코링크PE를 운용한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씨 수법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