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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종합

백신도입 TF에 ‘백신 급하지 않다’ 인물 있었다

 

한 의료인이 지난달 9일 충남 천안의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센터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준비하고 있다. 천안=최현규 기자
정부가 지난해 코로나19 백신을 신속히 확보하기 위해 구성한 ‘백신도입 특별전담팀(TF)’의 민간 전문가 2명 중 1명이 ‘백신 도입이 늦어도 나쁘지 않다’는 주장을 해온 인사로 확인됐다. 정부가 지난해 해외 주요 백신을 선구매하지 못한 배경에 부적절한 인선이 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6월 29일 관계 부처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백신도입 TF를 구성했다. 해외 백신 개발 동향과 국내 확보 방안 등을 검토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17차례 이상 회의를 열었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TF 참여 인사와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민일보 취재팀이 25일 국회와 의료계를 취재한 결과 TF에 참여한 민간 전문가는 송만기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차장과 묵현상 국가신약개발사업단장 2명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TF 구성원은 관계 부처 공무원 13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송 차장은 지난해 5월 이후 방송인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라디오와 유튜브 방송에 13차례 출연해 ‘다른 나라보다 백신 도입이 6개월 이상 늦어져도 나쁘지 않다’ ‘2021년 하반기에 국산 백신이 나올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묵 단장은 스스로 “TF에 자료 제공을 했을 뿐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로 미뤄볼 때 해외 백신 도입을 검토한 TF에서 ‘적극적인 선구매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은 제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백신 구매 방침을 정한 11월이 돼서야 다른 백신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이미 구매의 적기를 놓친 뒤였다.

송만기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차장이 지난해 6월 10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진행자와 전화 인터뷰를 하고 있다. TBS 유튜브 캡처


한국에 본부를 둔 최초의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에서 17년간 근무한 송 차장은 TF에서 사실상 유일한 백신 전문가였다.

그는 지난해 6월 10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다른 나라보다 6개월 혹은 그 이상 (백신 도입이) 늦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 볼 수 없겠네요”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송 차장은 “우리나라는 (확진자) 컨트롤이 꽤 잘되는 나라이므로 (다른 나라에) 수백만명 이상의 백신이 보급돼 안전성이 확보된 상황에서 (국내에) 보급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 코로나19 백신이 내년(2021년) 상반기 혹은 늦어도 하반기에 나올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하반기에는 (백신이) 나올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5월 29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는 “우리도 (백신 개발이) 아주 뒤처진 건 아니다”며 “(정부가) 백신 독립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4일 같은 방송에서는 “만약을 대비해 확보는 해놓되 접종은 최대한 신중하게 하는 전략이 좋다”고 말했다.

송 차장이 정부 백신도입 TF에서 방송에서와 같은 의견을 개진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는 이를 묻기 위해 전화한 취재팀에 “(TF 활동은) 전부 다 기밀 사항으로 알고 있다. 저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9일 충남 천안의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센터에서 간호사가 백신 접종 대상자에게 주사를 놓고 있다. 천안=최현규 기자


의료계 전문가들은 송 차장의 방송에서의 언급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신중함도 중요하지만 3상까지 데이터가 확보되는 백신을 믿지 못해 도입에 소극적이었으면 안 됐다”며 “결과적으로 접종을 늦게 만든 오판”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계 한 전문가는 “현재 기술 수준에서 우리나라가 백신을 개발한다는 것은 초등학교 축구 선수가 월드컵 가서 골 넣는 것과 같다”며 “백신에 관한 잘못된 메시지를 (정부에) 전달한 그룹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은 모두 임상 3상에 들어가지 못해 연내 출시가 불확실하다.

TF의 다른 민간 전문가인 묵 단장도 백신 도입 TF에서 활동하기에 적절한 인물이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는 2016~2020년 신약개발사업단의 전신인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단의 단장을 지냈다.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동으로 지원하는 사업으로 사업단은 2030년까지 국비 1조4747억원을 받아 신약 개발을 추진한다.

묵 단장도 백신 자체 개발을 강조해왔다. 지난해 7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개최한 ‘헬스케어 미래포럼’에서 “개발된 백신이 품목 허가를 받을 때까지, 다음 팬데믹이 올 때를 대비해서라도 끝까지 우리의 (백신) 역량을 만들겠다는 게 정부의 강력한 의지”라고 말했다. 지난 2월 2일에는 이광재·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국산 백신 로드맵, 코로나19 백신 자주권’ 토론회에 참석, 백신 개발 지원을 요청했다.

묵 단장은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백신도입 TF에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백신 개발 동향 등 참고 자료를 정리해 제공했다”며 “해외 백신 도입과 관련해 어떤 의견을 낼 입장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 “TF 참여 요청을 공식적으로 받은 바 없고 현재 TF 활동이 끝난 건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이 진행되는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 모습. 최현규 기자


백신도입 TF를 국장급 공무원이 팀장을 맡아 이끌어온 점도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백신도입 TF는 지난해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범정부 지원위원회(범정부 위원회)’ 산하에 만들어졌다.

범정부 위원회는 TF보다 두달여 앞선 4월 구성됐다. 정책의 방점이 치료제·백신 개발에 찍혀 있었고 해외 백신 도입은 부차적인 일이었음을 보여준다.

여러 부처 국·과장급 공무원들이 모인 TF는 백신 도입 관련 시급한 사안에 대한 결정권이 제한적이었다.

정부는 지난 1일에서야 보건복지부 장관을 팀장으로 하는 ‘범정부 백신도입 TF’를 구성했다.

TF는 백신도입총괄(복지부), 실무지원(질병청), 신속허가·출하 승인(식약처), 원료수급지원(산자부), 국제협력지원(외교부) 5개 분야로 구성됐다. 참여자의 직급도 관계부처 처·청장과 차관으로 올렸다.

범정부 위원회에 참여한 한 민간 전문가는 “해외 백신을 어떻게, 얼마나 도입해야 한다는 것을 책임지고 가는 사람이 지난해 11월까지 최소 3개월은 없었다”며 “안전한 백신을 고를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판이었다”고 말했다.

[정정보도문]
국민일보는 2021년 4월 26일 ‘“백신 늦어도 된다”는 인사가 ’백신 도입 TF‘ 멤버’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였습니다. 기사에서 송만기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차장의 라디오방송 발언 ‘다른 나라보다 (백신 도입이) 6개월 이상 늦어져도 나쁘지 않다’는 백신 ‘도입’이 아닌 ‘국내 개발’을 의미한 것이므로 정정합니다.

송 차장은 자신은 방송에서 ‘만약을 대비해 개발 중인 백신을 확보는 해놓되 접종은 최대한 신중하게 하는 전략이 좋다’고 발언했으며 백신 조기 확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슈&탐사2팀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extreme@kmib.co.kr

[왜 백신 도입 골든타임 놓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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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88905&code=11131100&sid1=soc